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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6-5 창립 2주년 말씀 사경회 요약 (강사: 김정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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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워싱턴성문교회에서 6월 5일부터 9일까지 5일간 창립2주년 감사 말씀 사경회를 인도하신 하늘사랑교회 김정수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요약한 것입니다.  

 

<주님의 옷자락을 만져라> 마가복음 5:25 - 34

 

* 열두해 혈루증 걸린 여인이 낫고자하는 간절한 열망이 있었다.  그 여인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서 예수님에게 가까이 가서 그 옷이라도 만지면 낫겠다는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그 옷을 만지니 병이 곧 낫게 되었다. 하나님의 생각이 밖으로 표현된 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다.  이 말씀을 듣고 그대로 믿으며 하나님의 생각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하면 그것이 그대로 이루어 진다.  우리의 권능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권능을 행사할 때 병이 낫고 문제가 해결된다.  성경에 나타나신 하나님은 오늘날도 살아 계신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죽을 힘을 다해 부르짖을 때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난다.  진리를 붙잡으면 살미 변화되고 관념적이었던 신앙이 체험적인 신앙으로 변한다.   

 

 

 

 

 

 

 

<우리의 가정을 라마나욧으로> 레위기 14:48 - 53   

    

* 이스라엘 집 벽에 나병 색점이 보일 경우 하나님께서 백향목과 우슬초와 홍생 실과 살아있는 새를 가져다가 잡은 새의 피와 흐르는 물을 찍어 그 집에 일곱번 뿌려서 정결케 하라고 하셨다.  우리들 교회나 가정, 사업터에도 나병 색점처럼 악한 영의 무리들이 끼어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렇게 악한 영들이 모여 있는 곳에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여 기도로 물리치지 않으면 교회가 잘 안되고 사업도 잘 안되고 가정도 힘들게 된다.  악한 영이 우리가 거처하는 곳에 있다는 것이 짐작되면 그 장소를 기도로 청소하여 거룩하게 해야 한다.  

 

* 다윗이 라마나욧에 피신 있을 때 사울의 군사들이 다윗을 잡으러 왔으나 사무엘 선지자 무리들의 거룩함 때문에 그 군사들이 오히려 예언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나중에 사울도 직접 다윗을 잡으러 왔으나 그도 그 장소의 거룩함에 영향을 받아 온 종일 예언하는 일이 있었다.  우리의 교회도 신실하게 기도하며 장소가 거룩하게 되면 교회를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영적인 평안함을 느낀다.  우리의 사업터도 가정도 이렇게 거룩함을 이루도록 하나님의 사람들이 와서 예배드리고 기도하도록 초청하면 좋고 가정예배, 사업터에서의 예배도 그 장소를 거룩하게 하는 방법이다.     

 

<하나님, 제가 왜 살아야 하나요?> 로마서 8:29-30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 인생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기 위해 부르심을 받고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총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하나님의 형상은 삼위 일체의 하나님이 서로간 완전한 사랑의 모습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는 삼위 간의 사랑의 확장으로 인간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들에게 나타나도록 목적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새로 거듭 태어난 존재인 성도들은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닮아서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거듭 태어나게 하셔서 새 사람을 만들어 주시고 자유의지를 주신 것은 성도들이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도록 성도들을 인격적으로 존중하시고 배려하신 것이다.  

 

* 우리가 이 세상에서 시간 속에서 살고 있고 영원 전이나 천국 생활부터는 영원 속에서 시간이 없는 세상이다.  영원한 세계에서는 더 이상 인격의 변화를 이룰 수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시간 세계에 두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도록 부단히 노력하라고 주신 기회이다.  천국에 들어갔을 때는 이 세상에서 이룬 최종 성품으로 고정된다.  어떤이는 5살 정도의 성품을 형성하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로마서 8장 30절에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부르시고 의롭다하시고 또한 영화롭게 하셨다고 하신다.  다시 말하면 성도들 자신이 하나님의 영광이 되도록 하셨다는 말이며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이시며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시다.  성도는 하나님의 공유적 속성인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사랑을 닮아가는 사람이다.  성도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았을 때 하나님의 비공유적인 속성인 전지, 전능하심이 성도들을 통해서 그 능력을 나타내신다.  성품의 영광이 이루어지면 능력의 영광이 따라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품,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이신 사랑하심을 성도들도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시 손양원 목사님은 자기 아들 둘을 죽인 학생을 양자로 삼아 함께 식사하셨다.  다른 이가 아들들을 죽인 원수를 앞에 놓고 식사하는 것이 편하냐고 질문하니까 손 목사님은 마음이 늘 심히 고통스럽지만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양자로 삼았다고 하셨다.  우리도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이라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억하고 사랑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영광이 된다.      

 

<하나님의 형상 회복하기> 창세기 1:1-2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였다.  혼돈은 외부적으로 정리되지 못하고 체계화되지 못한 것을 가르키고 공허는 내부적으로 채워지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혼돈과 공허가 있는 땅에 하나님께서 빛으로 무질서를 바로 잡으시고 땅과 바다를 만드심으로 생물들이 살 수 있도록 틀을 만드셨다. 틀을 만드신 후 각종 생물들과 사람을 만드셔서 그 틀에 채워 넣으셨다. 예레미야 4:23(보라 내가 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에는 이 없으며)에도 혼돈과 공허가 나오는 데 이는 남유다의 멸망당할 수 밖에 없는 혼란한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고후4:6(어두운 데에 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에서 성도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알도록 그 마음에 빛을 비추셨다고 하신다.   

 

* 하나님께서 광야 생활을 하는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하나님과 백성이 연합하기 위한 틀로 주신 것이다.  이 틀은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시기 위해 주셨다.  이 율법은 하나님이 왕이시듯 그 백성들도 종에서부터 왕으로 회복하기 위해 긍지와 정체성을 심어 주시기 위해 주셨다.  율법에서 말씀하는 주일 성수와 십일조 헌금 등을 지키면 하나님께서 왕에게 부어주는 풍성함을 부어 주신다. 

 

* 말라기서 이후 400년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는 암흑기에 헬라왕 아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이스라엘이 제우스 신을 믿게 하기 위해 성전에서 돼지피를 제단에 뿌리면서 하나님을 모독하였다.  이스라엘은 헬라왕의 가증한 행위에서 자신들을 지키기 위한 하시딤 운동을 펼쳤다. 이 운동은 이스라엘이 멸망한 것은 율법을 지키지 않은 데에 있는 것을 보고 율법 지키기 위해 전심으로 노력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613개의 성경에 있는 율법 조항들을 1만 여개의 시행 세칙들인 미드라쉬를 개발하여 열심히 지켜 왔는 데 이것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효과적인 틀이 형성된 상태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정비된 틀 속에서 내부적인 율법을 지킬 것을 강조하셨다.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마태복음 12:31-32


  1.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1. * 성경이 기록된 히브리인의 시간 개념은 서양인들이 생각하는 직선선상에 흐르는 시간 개념과 사뭇 다르다.  히브리인들은 시간이 주기적으로 반복한다고 생각하며 사람은 항상 현재 속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경고하셨는 데 이것을 어긴 아담은 육체적으로 죽지 않았으나 히브리 인들의 생각은 그 명령을 어긴 순간 아담은 이미 죽은 것으로 여긴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러 모리아 산으로 올라갈 때 나중에 하나님의 제지로 이삭이 죽지 않았지만 아들을 바치겠다고 결심한 때에 이삭은 이미 히브리인들에게는 죽은 것으로 여긴다. (히브리서 11:12, 19)   

  2. * 오늘 날 장로 교인들은 칼빈의 예정론에 영향을 받아 과거에 믿다가 현재 타락된 생활을 해도 결국 믿음으로 돌아온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무슨 일을 해도 한번 믿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책임적으로 구원하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현재의 신앙 생활이 형편없어도 별로 경각심이나 회개하는 신앙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신 구원의 새언약을 오늘 현재 내가 살면서 어기면 새 언약이 파기된다. 예레미야 26:14-17 에서 하나님께서 다섯단계의 경고를 주시는 데 이줄 3단계까지의 경고를 무시하면 하나님과의 언약이 파기된 것으로 보고 인간은 멸망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베드로후서 1:11에서 넉넉히 구원받도록 베드로 사도가 독려하고 있고 베드로후서 1:5-7에서 더욱 힘써 믿음을 더하고 사랑을 더하라고 격려하고 있다.

* 오늘 본문 말씀처럼 계속 성령의 말씀을 훼방하는 자, 즉 회개하지 않는 자는 죄용서하심을 받지 못한다.  마 18:21, 22에서 예수께서 일흔번의 일곱번이라도 용서해 주라고 하신 말씀은 진실되게 회개하는 자에게 해당하지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히브리서 10:26-20에서도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계속 죄를 범하는 자는 속죄받을 수 없다.  그러므로 믿었던 자가 회개하지 않고 계속 죄를 범하면 그 구원이 취소될 수 있다.

* 구약에 회개를 위하여 드리는 제사중 속죄제와 속건제가 있다.  속죄제는 남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은 죄를 위하여 드리는 제사인데 오늘날 이러한 죄는 하나님께 진실되게 죄를 고백하면 죄사함을 받는다.   속건죄는 죄를 짓되 그 죄가 남에게 피해를 입힌 경우에 드리는 제사이다.  속건제에 해당하는 죄를 지었을 경우 오늘날도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가서 사죄하고 피해를 입힌 액수의 적게는 20% 많게는 4배까지 피해 보상을 하면서 죄사함을 구해야 하나님께서 용서하신다.  요한계시록 20:12에서 구원을 결정하는 생명책 외에 또 다른 책인 행위를 기록한 책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게된다. 죄를 고백하고 진실하게 회개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그 의로움을 회복시키신다.  그리고 피해를 입힌 것을 다 갚은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100배로 복을 더 주신다.

  1.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로마서 12:1-2

  2.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 사사시대에는 사람들이 각자 제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한 시대였다.  이 시대는 하나님도 자기 생각에 맞추어 믿으려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과 동행하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는 그 예배가 인간의 기준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에 맞추는 예배이다.  하나님의 기준에 맞추려니 불편한 점도 있고 특별한 정성을 더 들여야 할 필요가 있다.  

*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신 말씀은 안식일에 도무지 일하지 말고 하나님만 섬기라는 뜻이다.  안식일에 일하지 않고 먹는 식사도 미리 준비해 놓아서 들면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데 집중해야 한다.  요즘 열린 예배의 개념이 한국에서 도입되고 있으나 이는 바람직 하지 못하다.  세상 사람들의 구미에 맞게 예배 중에 구수한 유행가도 부르게 하는 것은 하나님 기준으로 드리는 예배가 되지 못한다.  교회는 예배가 회복되어야 하나님의 능력이 따라온다.  건물을 지으면 교인들이 모인다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않다.

* 우리가 드릴 영적 예배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다.  세상 속에서 우리 자신을 제물로 삼고 날마다 삶으로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는 일이다.  

  1. <광야 마지막 훈련을 통과하라!> 민수기 12:1 - 16

  2. * 오늘 본문 말씀은 광야 40년의 생활을 마감하고 이제 가나안 땅 정복하러 들어가기 직전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백성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일어난 일이다.  그 훈련은 위에 있는 권위에 대한 문제이다. 모세가 원래 아내가 멀리 살고 있으나 또 구스 출신 여자를 아내로 취한 일에 대해 말씀이다.  이 일에 대해서 누나와 형인 미리암과 아론이 이에 반발하고 모세의 권위에 도전하고 있는 장면이다.  모세가 이일에 대해 잘못한 것이 사실이나 하나님은 오히려 미리암을 심판하셔서 문둥병이 걸리게 하신다.   모세가 미리암을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미리암을 고쳐주신다.

  3. * 마태복음 10: 41, 42(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의 말씀을 보면 우리에게 세가지 종류의 사람들을 대하게 된다.  선지자는 우리 위에 있는 권위자를 말하며 의인은 우리와 동류의 사람들, 그리고 작은 자는 우리보다 아래 있는 사람이다.  

* 그리스도인은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이기 때문에 부모, 통치자, 목사 등 권위자에게 위에 있는 그 권위를 철저히 존중해야 한다.  벧전 2:18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의 말씀은 까다롭고 섬기기 힘든 위의 권위도 존중하라고 권고한다.  권위자를 인정하지 못하면 최고 권위자이신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  권위자를 인정하도록 회복하는 일은 그 권위자에게서 좋은 점 한두가지라도 있으면 그것들에 집중하면 된다. 

* 작은 자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하나님의 심판의 근거가 된다. 작은 자도 존중하며 작은 자가 위의 권위인 우리에게 무례하게 대하면 이를 고치고 가르쳐야 한다. 

<비움과 채움> 사도행전 4:23 - 4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 2000년의 기독교 역사 가운데서 두 가지 극단으로 치우치는 운동들이 항상 있었다.  한가지는 신비주의자들로 영적인 일에만 집중하고 윤리나 율법을 지키는 데 약한 경우이고 또 다른 극단은 신앙을 합리주의, 이성주의로 집중하여 영적인 점을 될 수록 인정하지 않고 모든 것을 이성적으로 풀어나가려고 하는 경우이다.  신앙을 합리주의로만 접근하면 성령의 능력에 의지하지 않고 결국 신앙 생활도 자기 의지로 하게된다.  우리의 신앙은 성경에서 말씀하듯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하심과 같이 영적인 면과 이성적인 면을 합하여 하나님을 믿어야 올바른 믿음 생활이 된다.

* 성령 세례는 사도들에게 최초로 성령께서 인간에게 임재하시기 위한 사건이고 오늘 날 성도들에게는 성령 충만을 구해야 한다.  성령 충만은 초신자 인 경우 구원의 감격에 기뻐하지만 자칫하면 조금만 잘못되면 성령충만을 잃어버린다.  이를 그림으로 표현하면 유리병에 흙이 많이 차 있는 위에 물이 조금 부으면 그 물이 쉽게 흘러 나오는 것과 같다.  성령 충만이 더 채워지려면 우리 속에 있는 죄를 회개해야 한다.  이것은 유리병 안의 흙을 파내는 것과 같다.  흙을 많이 파 낼수록 물이 더 많이 채워지듯, 회개하면 성령께서 더욱 우리에게 더 많이 임재하실 수 있다.  

* 갈라디아서 5:22, 23 (오직 성령의 열매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에서 말씀하시는 성령의 열매는 성령 안에서 성품의 변화를 말씀하는 것이다.  율법을 잘 지킬 경우 외부적인 틀을 잘 갖춘 셈인 데, 내부적으로 성품의 변화도 일어나야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삶이다.  이렇게 될 때 성령의 은사인 성령의 능력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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